재난 이후 계몽주의사상으로 유럽의 근대화 촉진시킨 리스본 지진
18세기, 전성시대를 맞은 계몽주의는 시대가 되자 재난에 대한 태도가 신의 노여움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재난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할 길이 없는지 찾았다. 재난의 새로운 태도는 기존의 해석과 충돌하며, 미래 재난 예측을 두고 토론을 하였고, 이 논쟁의 중심 사례가 1775년 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리스본 대지진이었다. 이 재난이 야기한 쓰나미는 해안을 덮쳤고, 약 1만 명의 사망자와 4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지진은 다른 자연재해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1775년 이전 리스본은 사회적으로 가톨릭교회가 많이 남아있었지만. 종교개혁으로 예수회가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면서 추방과 박해가 일쑤가 되면서 주변 경쟁국보다 발전이 지체되었다. 이후 리스본에 지진이라는 참사가 일어나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길은 균열이 생겼다. 궁전과 성당 등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부두쪽으로 도망쳤지만 쓰나미가 몰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 재난은 쓰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수많은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해풍이 불어 불길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연이은 재난으로 많은 피해가 생겼고, 인명피해의 경우 리스본의 인구 대략 20만 명 중 최소 1만 명, 최대 10만 명이 사망했다고 추측된다. 사망자의 수를 추측하는 이유는 체계적인 인구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정부가 시신으로부터 역병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장하거나 바다에 수장하였다. 또한 대지진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리는 인구도 많아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기 어렵다.
물적 피해의 경우 리스본의 건물 중 85%가 파괴되었고, 궁전도 파괴되었다. 또 지진이 발생시킨 비용은 포르투갈 국내총생산의 32%~4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