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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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 Web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시는 농업보다는 교역과 사업에 종사하는 거주자들의 정주공간이 된다. 도시는 하나의 시장인 것이다(Weber).” ”도시는 부분적으로 자치적인 결사, 즉 특수한 정치-행정적 안배를 가지는 ‘공동체’다.” ”완전한 도시공동체는 반드시 다음의 다섯 가지 양태를 드러내는 정주공간 위에서, 교역과 상업이 상대적인 우월성을 나타내어야 한다. (1) 성채, (2) 시장, (3) 도시의 자치적 법정, (4) 구성원간의 결사체, (5) 시민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권력의 최소한 이상의 부분적 자치, 즉 독립성.” ”도시라는 새로운 창조물 안에서 거주자들은 한 사람의 시민이 된다. 시민으로서의 서약은 개인적으로 행해진다. 각 개인은 친족이나 종족의 일원이 아닌 그 도시의 지역적 결사에 소속된 개별적인 구성원으로서 시민권을 부여받게 되며 이를 통해 시민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 받게 된다.”
- Wirth는 도시를 “사회학적 목적상 도시는 사회적으로 이질적인 개인이 모인, 상대적으로 크고 인구밀도가 높으며 영속적인 정착지라고 정의”했다(1938, 8쪽).
- 도시는 이제 ‘사회적-물질적-기술적 과정’(social-material-technological process) 혹은 ‘배치’(assemblage)로 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는 사람, 동물, 돈, 사물, 관념(ideas), 기술이 역동적이고 불안정하게 흐르고 연결되면서 교차하는 곳이다. 이러한 연결과 교차의 역동성과 불안정성은 위험을 내재한다. 문제는 이 위험은 종속적인 동시에 응집력 있는 힘으로 전체 체계를 침식하며, 그 체계를 드러내고, 또 그것을 파괴하는 부분적인 체계와도 같다(Lefebvre, 1972, La pensée marxiste et la ville, pp. 71 참조). 더 나아가 도시는 (국가-시민, 자본-개인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사람과 동물과 똥, 돈과 사물과 쓰레기, 관념과 정책과 기술이 역동적이면서도 불안정하게 흐르고 연결되고 교차되며, 단절도 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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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객은 도시 공간, 군중, 쇼윈도를 구경하며 어슬렁거리는 도시의 관찰자이다. 산책자(산보객)은 무관심한 듯 떠돌아다니는 관음증 환자이다. 벤야민이 서술했듯이 산책자(산보객)은 "아스팔트 위에서 식물 채집을 한다." 산책자(산보객)은 거리 위에서의 삶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며 도시를 돌아다닌다. 그는 한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동시에 감상하는 눈길로 군중에 참여하기도 하고 소비 공간을 지나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산책자(산보객)은 "소비자에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상품의 유혹에 굴복한다." (Benjamin, 1997: 55) … 한편으로 산책자(산보객)은 능동적인 행위자이다. 그는 탐정처럼 행동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 본성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소외된 개인이다. 그는 익명의 군중 속에서, 상품 물신주의 속에서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추구 속에서 피상적인 위안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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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험과 도시
-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세계적 규모의 전쟁과 내전, 냉전으로 인한 이동의 중단, 민족간 차별 등 개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냉전 영향 위험요소들이 중첩됐다. 20세기 말 탈냉전과 함께 동아시아의 복합위험을 공동으로 해결하려고 다양하게 시도했지만, 2010년대 들어 대부분 중단되었다.
- 2010년대 들어 전세계적 차원의 지속가능성 위기와 관련하여, 지역 양극화를 비롯한 도시들의 복합위험이 증가되고 있다. 예는 다음과 같다. 탈산업화, 산업쇠퇴, 일자리 감소 등의 경제적 위험, 노령화, 인구 감소, 청년의 부재와 같은 인구학적 위험, 환경오염과 기후 재난으로 인한 기후위기, 사회적 연대, 공동체의 부재로 인한 격차, 소외, 낙인 등의 사회적 위험.
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이 필요하다. 이는 자본주의가 만든 추상공간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르페브르가 (역으로) ‘차별화된 공간’이라고 부른 것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 즉 자신을 위한 공간을 생산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다. 이는 기존 시민권 헤게모니 내부에서 이뤄지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도에서 이뤄지는, (위계를 기반으로 한)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 도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재생산되는 곳 .. 파편화되고 균질화되고 계층화된 공간을 생산하며, 이렇게 생산된 공간 속에서 자본주의의 지배적 사회관계가 재생산된다. … (이로 인한) 모순은 이윤 확보를 위해 공간을 착취하고자 하는 사이에서 요구, 필요에 의해 공간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구 사이에서 발생. 또한 자본, 권력, 의사 결정은 중심부에 집중되지만 대중들의 일상생활은 주변부로 분산화, 파편화되면서 사회적 응집력과 문화적 헤게모니가 약화된다. … 사회관계 재생산의 약화 … 도시에 대한 권리 주장은 자본주의가 만든 추상공간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르페브르가 ‘차별화된 공간’이라고 부른 것을 생산하기 위한 투쟁, 즉 자신을 위한 공간을 생산할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다.
-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영역 역시, 자본주의에 가장 취약한 지점인 공간 영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자본주의 공간 조직에 의해 착취당하고 지배당하는 ‘주변화된’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도시 혁명의 시대, 즉 도시화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투쟁은 이런 대중들이,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도시/공간의 관리를 쟁취하는 투쟁이다.
이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누가 어떻게 이익을 만드는가, 도시라는 시장에서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활’이라는 명분을 통해 (악마화된) ‘형제복지원’이 어떤 사회시설로 기능했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부랑인수용소는 부랑인을 우범자이자 비문명인으로 여겨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더 나아가 이 교화의 자리는 이익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은 수용자의 교육을 형식적인 목표로 삼고, 교육이 가능한 사업체를 일부 입주시키거나 공정 위탁을 했다. 지역 내 사업체들은 수용자를 값싼 인건비로 사용했고,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의 직업훈련 참여 실적을 쌓고, (업체들의) 이용료와 실적을 통한 정부 보조금을 취했다. 반면에 개인의 자활과 ‘성장’은 허울 뿐이었다. 따져보면 집단수용시설의 자활작업장은 정부와 시설이 공모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사업체가 연루되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