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14년 0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침몰한 사건,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성찰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활발히 항해하던 세월호와 참사 이후 인양되는 세월호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 리본은 추모의 상징이 되었다.
사고 전말
사건 전 날인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로 출발하였고 탑승자는 일반 탑승객 74명, 화물 기사 33명,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 14명, 인솔자 1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이었다. 16일 오전 8시 50분경 전남 진도면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는 급격히 변침하였고, 8시 58분에 병풍도 북쪽 20km 인근에서 조난 신호를 보냈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이동하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9시 35분 해경이 도착하자 기관부, 조타실 선원들이 승객을 내버려둔 채 먼저 탈출했다. 침몰 전까지는 172명이 구조되었지만, 10시 30분 침몰 이후에는 아무도 구조되지 못했다. 4월 18일 세월호는 완전히 침몰하였으며, 이 참사로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사망하였다.
| 사고 일시 |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추정 |
|---|---|
| 사고 위치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 |
| 피해 현황 | 전체 탑승 인원: 476명 (사망자 299명, 실종자 5명, 생존자 172명) |

좌표 (출처: 안산온마음센터 재난심리지원종합플랫폼)
사고 발생 원인
사고가 발생한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있다. 먼저 세월호는 안개가 자욱한 기상 상황에도 출발 시각을 연기하더라도 출항을 진행하였고 안전점검표에 적은 것보다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하였다. 이는 배가 복원력을 잃은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세월호가 이상이 생긴 이후 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VTS)의 부실한 초기 대응이 있었다.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되었고, 진도 VTS는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진입해 있음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출동한 해경은 배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에 있거나 선체에 있는 승객만 구조하는 등 내부로 진입하는 적극적 구조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구역(맹골수도)이었지만, 이 지역의 운항 지휘자는 입사 4개월차 3등 항해사였음이 밝혀졌으며 이곳을 통과할 때에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드러났다.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은 침몰 직전까지 객실에 머무르라는 안내 방송을 하고, 자신들만 배 밖으로 나와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 여객선의 안전과 운영을 맡은 선원들이 무책임한 행동들은 명확한 사고의 원인이다.
정부는 사고 발생 직후 초동 대처에 실패하였다. 사고 수습을 위한 조직으로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총괄 업무를 맡았으나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 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등의 실수를 저질렀다. 여기에 별도의 관련 사고 대책 본부는 10여 개가 조직되어 중구난방이 되었으며, 혼란이 가중되면서 구조 작업은 지연되었다.
세월호가 선수를 제외하고 완전히 침몰된 시각은 오전 11시 20분이었지만, 실종자 수색을 위한 잠수요원은 사건 발생 8시간 이후(약 오후 5시)에 투입되었다.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건 발생 첫 날에 투입된 인원은 알려진 바와 달리 총 16명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구조를 돕는 장비들은 2~5일 이후에 투입되는 등 뒤늦은 구조 작업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