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2019 재난의 감정정치와 추모의 사회학.pdf

추모란 무언가

추모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이라는 뜻으로, 고인에 대한 남은 자의 기억과 애도 과정을 지칭한다. 즉 추모는 사람이나 사물의 기억을 유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며 애도를 통해 슬픔을 넘어 현재를 살아내고 미래의 삶을 향하도록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인의 죽음이 비극적인 사회적 참사와 연루된 사회적 죽음인 경우, 추모는 희생자를 대상으로 한 기억과 애도만이 아니라 비극적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기념과 의례, 후대에 대한 교육 등을 수반한다. 또한 특정 시기의 사건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추모활동은 일회적이 아닌 지속성과 주기성을 가지며 일정한 공간과 장소성을 매개로 이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적 추모의 공간적 구현은 통상 합동묘역, 추모공간, 역사교육/기념관(memorial) 등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사회적 추모는 특별하고 가치 있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현재의 기억을 포함하기에 곧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가 되며, 추모의 대상은 과거에서 찾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형성하는 동기는 항상 현재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추모는 재난을 야기한 과거의 공동체에 대한 현재 공동체 성원들의 사회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이나 4・3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에 의한 조직적인 진실의 부인(denial)이 개입하는 경우 추모활동은 진실규명과 사법적 해결 이후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진실규명과 법적 배상, 명예 회복의 노력과 나선형적으로 결합되어 함께 나타나고 거꾸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추모는 사건의 진실과 희생자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확보해가는 사회적 인정투쟁의 중요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추모활동에 내재한 이 같은 복합적 차원을 아우르기에 **‘유족의 상(喪)의 과정’**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상의 과정에서 사회적 참사의 유족들은 죽은 사람이 남긴 유지(遺志)의 실체를 상정하고 계승하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고인(故人)의 생명을 영속시키는 동시에 아픔을 승화시키는 ‘유지(遺志)의 사회화’ 과정을 경유한다. 그리고 죽은 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유족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기존 사회관계를 재(再)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보다 범위를 좁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남긴 과거의 유산을 청산해가는 이행기 정의 과정에서 추모가 지닌 사회적 의미를 다시 세 차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피해자의 권리이자 상징적 배상, 회복과 치유의 과정, 기억의 연대를 통한 사회형성의 과정이 그것이다.

기억의 전쟁

역사적으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극복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을 시인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동상을 세우고, 거리와 광장에 사람들 이름을 붙이고, 추모시와 기도문을 짓고, 철야집회와 행진을 하는 것이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의 이행, 잊힌 소수집단의 자력화, 과거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 등의 이유로 최근 추모 기념물과 의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전세계적으로 인권침해 희생자를 추모하는 작업은 부인하는 세력과 시인하라는 세력이 치열하게 경합하는 기억전쟁의 영토가 되고 있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공적 장소들의 새로운 명명, 박물관 건립, 기념행사, 공식사과 및 속죄, 장소의 재헌정과 같은 ‘상징적 배상(symbolic reparation)’은 추모가 지닌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